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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수식 칼럼] 주님의 신용 등급과 '나'라는 브랜드

by 교회네트워크신문 2024. 6. 26.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정탐후에 보고하고 있다. (ⓒ김상식)

약속은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두는 것’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을 약속이라 합니다. 약속은 참 중요하죠. 왜냐하면 신용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면서 신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죠. 개인과 어떤 단체의 신용을 평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죠. 개인과 단체가 소유하고 있는 현금 자산, 부동산, 월 소득 등등을 따지고 또 따져서 신용 점수와 등급을 책정하고, 대출, 카드발급 외에 여러 가지가 진행합니다. 또 다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개인이나 단체가 가진 잠재력을 보고 투자의 개념으로 신용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실용성 있고, 이 사람, 이 단체가 그 계획을 감당해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죠. O.K. 사인을 받은 사람이나 단체는 그 개인이나 단체가 하나의 브랜드와 같은 경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믿음의 경주에서는 어떨까요? 믿음의 경주에서 역시 하나님도, 우리도 각자의 신용을 서로 간에 저당 잡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 천지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도 우리에게 약속이라는 것을 하셨기 때문이죠. 그럴 필요가 없이 우리를 그냥 잡아서 끌고 가셔도 되는데, 주님 스스로 우리에게 신용을 저당 잡히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래야 주님께서도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의 신용을 평가하실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사실이 출애굽 당시의 상황 중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던 사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시죠.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가문의 각 지파중에서 지휘관 된 한 사람씩 보내라!”

그래서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모두 12명을 선출하여 가나안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사실 가나안 정탐은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였습니다. 신명기 1장 2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40일간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먼저 보고를 시작합니다.

"자~ 지금부터 40일간 정탐한 결과를 보고하겠습니다. 모두 이 도표를 보아 주십시오!”
“가서 보니 그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 이었습니다. 곡식과 과일이 얼마나 과실이 풍성한지 다들 감탄하실 겁니다.”
“또 그곳에 사는 거주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거기 거주민은 강했습니다. 그리고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자손의 거인들을 거기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읍들은 매우 크고 견고했습니다. 부족의 위치를 보면 아말렉인은 남방 땅, 여부스 아모리 헷 족속은 산지 그리고 가나안 족속은 해변과 요단강가에 각각 분포해 있습니다.”
"이상 치밀한 정탐과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저희들이 내린 결론은... 가나안 정복 불가! 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비교했을 때 메뚜기 같은 존재입니다. 이상 보고를 마칩니다!"

순간 모였던 사람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겠죠? 그리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면서

“뭐야 그럼 여기까지 온 게 다 헛고생이란 말이야? 아니 그럴 거면 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거지?”
그때! “자자 진정들 하십시오. 아직 보고가 끝난 게 아닙니다. 다들 조용히 하시고 저희의 보고를 들어보십시오.” 나이 많은 갈렙이 여호수아와 함께 백성들 앞에 섰습니다.
“그들이 크고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합시다. 그들은 우리 밥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라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떤 보고를 더 신뢰했을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죠. 백성들은 아우성을 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망은 하나님께로 이어졌죠.

“어찌하여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맞아 죽게 하시는가?”

전능자의 신용이 인간들에 의해 바닥에 떨어진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 공격을 포기하고 광야로 되돌아갔습니다. 수백만의 엄청난 군중들은 싸움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광야로 다시 나선 것이죠. 하나님은 이들에게 어떻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약 40년을 더 광야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사십년 동안의 광야 생활'이라는 형벌을 내리신 것이죠. 40년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날수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았죠. 하나님의 신용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던 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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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두는 것’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을 약속이라 합니다. 약속은 참 중요하죠. 왜냐하면 신용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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