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복음의 불모지로 인식하지만, 울산 씨비에스와 함께 시작된 나가사키(Nagasaki, ながさき) 순교지 탐방은 벌써 내년이면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어떻게 보면 울산과 일본은 무슨 관계가 있으랴 생각이 들지만 거리상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여름 동경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일본에서 지진이 났을 때 울산에 사는 여러 성도들이 동경에서 지내는 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원지에서 동경은, 거리상으로 울산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뉴스는 일본지진이라고 하니 당신들보다는 일본 동경에 있는 제 안부를 물어온 것입니다. 참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가 우리에게는 일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니면 심리적으로 일본이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아버님께서 18세 때 할아버지 돈궤짝을 깨뜨려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서 자수성가를 하신 땅이기도 합니다. 공장에 급사로 취직해서 낮으로는 청소를 하며 밥을 짓고 밤으로는 일본인 직공들로부터 '난데스까(ナンデスカ, 무엇입니까?)'를 통해 일본말을 익혔던 곳입니다. 그 일본말을 전수받은 적이 없지만 아버지가 우물가에서 밥을 안칠 때 얼마만큼 물을 잡아야 하는지를 동네 처녀로부터 배웠고 먼 훗날 아들이 다른 친구들처럼 자취하겠다고 요청했을 때 손마디 어디까지 물을 부어야 한다고 일러 주셔서 기술전수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피혁공장에서 일하다가 후에는 사장이 되었고 광복이 되자마자 귀국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한국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나가사키의 원폭으로 인해서 제게 유일한 고모님이 폭사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어머니 외에는 고모도 이모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모는 그 가난한 시절 아기 낳고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어머니 다음으로는 이모, 고모가 우리가 자라는 데는 귀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시고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입니다.
20년 전 나가사키에 갔을 때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가서 둘러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로 공원을 만들어 놓은 일본의 위선을 보면서 언제쯤 일본이 자신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고 당신의 속국인인 한국 사람들, 아니 나의 소중한 고모의 생명까지 앗아간 전범인 것을 깨달을 날이 올 것인지 아쉬웠습니다. 복음이 그들의 눈을 밝히기까지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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