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킬링필드(Killing-fields) 역사의 현장을 가다
프놈펜에는 ‘고문 박물관’이라 불리는 뚜얼슬랭 박물관(Toul Sleng Museum)이 있다. 이곳에는 캄보디아의 끔찍한 대학살 기간(1975~1979)에 고문당하고 죽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여러 자료를 모아두었다. 사진자료뿐 아니라 실제 그 당시의 현장과 그때 사용했던 고문 도구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너무도 생생해서 방문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놓는다.
필자도 충격적인 전시 자료들에 정신을 팔아가면서 보던 중에 소매치기를 당해 지갑까지 잃어버렸다. 혹시나 몰라서 지갑을 넣은 가방을 몸 앞에 단단히 매고 조심해서 다녔는데도, 폰카메라를 꺼내며 잠시 지퍼를 열어둔 사이에 털리고 만 것이다. 그만큼 끔찍한 학살의 광경들을 보면서 거기에 온 정신이 다 빼앗겨 있었던 것이다.
킬링필드 대학살!
이 사태를 일으킨 사람들은 크메르루주(Khmers rouges)라고 불리는 캄보디아의 좌익무장단체였는데, 그들은 캄푸치아 공산당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지도자는 폴 포트(Pol Pot)라는 인물이다. 베트남 전쟁(1955.11.1~1975.4.30) 당시에 남베트남을 지원하던 미군이 캄보디아를 거쳐 오는 북베트남의 군수물자 보급로를 차단하고자, 캄보디아에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이로 인해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다. 당시 캄보디아를 통치하던 론놀 정권은 친미 정권이었으므로 이를 틈타서 미군에 대적하고자 하는 크메르루주가 농민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입고 론놀 정권과 싸워 이겨서 정권을 잡게 된 것이다.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고 나서 당시 캄보디아에서 농민 외에는 전부 미국의 자본주의 문화에 물든 반동분자로 여기고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고 수도 프놈펜에 살고 있는 도시민들을 강제로 추방해 농촌으로 이주시켰다. 폴 포트는 도시민을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모든 국민을 기본인민(교육을 못 받은 농민과 노동자)과 신인민(도시와 문명의 혜택을 받은 이들)으로 분류했고, 기본인민을 이상적인 국민상으로 생각했다. 그의 눈에 신인민들은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사회를 망치는 국민이었고 나라를 위해서 없어져야만 하는 사람들로 여겼던 것이다.
폴 포트는 프놈펜 주민들을 단기간에 추방하기 위하여 미국의 폭격이 올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렸고, 크메르루주 병사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심지어 저항하는 이들은 환자, 아이, 노인, 임산부 등 예외없이 그 자리에서 처형하기도 했다. 심지어 걸어가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농부의 정신이 없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1975년 4월 17일 강제 이주로 사망한 이들만 1만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프놈펜 외에 다른 도시에서도 강제 이주가 단행됐다. 모든 지식인은 다 숙청의 대상자였기에 농민 외에는 모두가 죽임을 당하다시피 하여 당시 인구 800만 명 가운데 200만 명 가까이 죽었다고 하니, 전체 국민의 1/4이 죽임을 당한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대학살 사건이 된 것이다.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은 프놈펜 외곽의 쯩아익에 매장됐다. 이러한 희생자들의 집단 매장지, 즉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전역에 2만여 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계속)
http://www.ccmm.news/news/articleView.html?idxno=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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