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한국 교회의 주일 현장 예배 참석률은 평균 73% 전후로 나타났다. 여기에 온라인 예배 참석자까지 포함하면 8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코로나19 이전 상황과 비교했을 때 실제 주일 성수 인원은 약 20-30% 정도 감소했다. 게다가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한 스마트폰의 상용화는 개방성, 다양성, 접근성, 보편성과 함께 우리 사회를 매우 미세한 나노처럼 쪼개 놓았다. 그만큼 SNS 사용자 수는 급격히 올라갔고, 우리 사회에는 대리인격이 활성화면서 가치편향, 가짜뉴스, 현실도피, 탈인격적 소통과 함께 고립, 고독, 독상 문화, 비혼주의와 같이 공동체성을 뒤흔들 만한 사회적이고 물리적인 복합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이라고 말하지만, 지·정·의로 창조된 인간은 전인적 대면과 오랜 교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깊은 만족과 우정을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새로운 공감대를 이룰 만한 인종, 문화, 세대, 이념, 성향과 같은 요소로 인해 새로운 사회, 소위 신 부족사회(neo-tribe society)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생명욕을 가진 존재로서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를 갈망하는, 그래서 홀로 살아갈 수 없는 피조물로 창조되었기에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의 사회를 분열되고 해체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방식의 사회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분열과 해체가 아니라고 결론짓더라도 분명 한국 교회의 공동체성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봉착한 한국 교회는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좀 더 본질적인 부분에서 그 해결책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창조론적 관점에서, 교회는 삼위일체적 공동체로서 '함께 비우고 함께 희생하기'를 훈련하고 실천함으로써 거룩한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다.
본래 교회는 삼위일체적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머리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 된 공동체로서, 성자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연합한 존재이시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최초 교회를 순산하신 모체시다. 따라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삼위일체적 구조로 존재할 때만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의 삼위일체적 구조는 어떤 방식을 말하는가? 그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비우고 함께 희생’하심으로 하나를 이루셨듯이 교회의 공동체성은 조건 없는 비움과 서로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섬김적 희생을 통해서만 교회다운 공동체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곧 교회의 전 구성원이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만큼, 그래서 각자의 마음을 서로에게 내어주고, 사랑할 때 교회는 세속적이고 관계적인 결속을 넘어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으로 하나 된 사랑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함께’라는 용어다. 현대 교회는 내적 공동체성을 성숙시키기 위해 어떻게 온 교우가 ‘함께 비우고 함께 희생하기’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민의 깊이만큼 교회의 공동체성은 비례적으로 향상되리라고 본다.
둘째, 교회론적 관점에서, 교회는 모이고 흩어지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기에 두 모습 중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을 때 균형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균형 잃지 않기'다.
예배신학적으로 말하면, 기본적으로 예배는 크게 ‘모임-말씀-성만찬-파송’의 예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모임의(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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