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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광수 칼럼, 공중나는 새를 보라

by 교회네트워크신문 2023. 6. 18.
꽃을 든 참새(ⓒ박준선)

울산시내에 살때는 공중 나는 새들을 보기 어려웠다. 한해 한번씩 떼로 찾아와 전선에 줄지어 앉아있는 까마귀들과 베란다에 날아와 고집스레 집을 지으려는 비둘기 외에는...

그런데 경주 산내의 삶은 새들과 함께하는 삶이다. 아침에 눈을  떠면 각종 새소리들이 들려오고 마당이나 길에 나서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들과 펜스, 텃밭, 지붕위에 앉아 노래하는 작은 새들을 보게된다. 새들을 보면 '공중나는 새를 보라' 시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의 평생은 염려의 평생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며 의식주 문제에 매여 살아간다. 잡지를 손에 잡고 그 내용을 살펴보라.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 이 세상에서 몸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주님은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지말라 하신다. 염려하지 말아야 할 예로서 공중나는 새를 보라고 하신다.

공중나는 새는 어떠한가? 먹을 것을 위해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들이지도 않는다.그런데 어떻게 먹고 사는가?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지렁이나 곤충, 열매 등 먹을 것을 공급하신다. 새는 본능적으로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알아 그것을 먹고 산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믿음으로 새처럼 의식주를 위해 아무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그 말이 아니다. 새는 심고 거두고 저장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정복하라 다스리라' 는 명령을 받았고 타락한 후,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성과 능력을 주셔서, 때에 따라 뿌리고 거두고 쌓을 수 있게 하셨다. 그러니 사람은 의식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단지, 하나님은 우리가 의식주로 인해 염려하는 것을 하지말라 하신다. '너희 하늘 아버지' 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이다. 새들은 그냥 피조물에 불과한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반적인 섭리의 역사로 그들을 먹이신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요 특히, 성도는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너무나 귀한 존재이다. 한갖 미물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는가? 당연히 먹이시고 입히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의식주 문제로 세상살이의 문제로 염려하는 것은 세계최고 부잣집 아들이 먹고 입을 것으로 인해 염려하는 아이러니와 같다.

성도의 염려는 보다 더 차원높은 것이어야 한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나를 보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지 어떻게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 그의  신성한 성품의 참여자가 될지, 어떻게 몸된 주의 교회를 더 잘 섬길 것인지, 어떻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 것인지를 염려하며 기도하며 힘쓰며 살아야 할 것이다.

'공중의 새를 보라'

http://www.ccmm.news/news/articleView.html?idxno=950 

 

[이광수 칼럼] 공중나는 새를 보라 - 교회네트워크신문

울산시내에 살때는 공중 나는 새들을 보기 어려웠다. 한해 한번씩 떼로 찾아와 전선에 줄지어 앉아있는 까마귀들과 베란다에 날아와 고집스레 집을 지으려는 비둘기 외에는...그런데 경주 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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