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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석배 역사칼럼③] 초기 울산 기독교의 귀한 일꾼, 정덕생 목사

by 교회네트워크신문 2023. 3. 27.
교회네트워크신문은 기획 연재로 울산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며, 본받음을 목적으로 울산교회사연구소 이석배 목사의 역사칼럼을 주 1회 싣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정덕생 목사는 1881년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서 5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덕생은 1900년에 내한한 왕길지 선교사가 경남 동부지역인 송정, 기장, 병영, 울산 등지를 정기적으로 순회할 때 기장군 철마면 안평(安平)마을에서 전도하여, 1902년에 안평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정덕생의 집은 안평교회 건너편에 있었기에, 호주 선교사들과 접촉을 통해 기독교로 개종했을 가능성이 많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박용규 편, 2018, 149)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동래군 안평교회가 성립하다. 초에 박신연(朴信淵), 정덕생(鄭德生), 정희조(鄭喜祚), 정덕선(鄭德善), 박도주(朴道柱) 등이 신교(信敎)함으로 교회가 성립되니라.

이를 볼 때 정덕생은 21세(1902)에나 그 이전에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정덕생의 등장과 동역으로 인해, 선교사들의 순회 전도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인생은 ‘만남’으로 그 미래가 정해진다. 정덕생이 선교사들을 만남으로 그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그를 통해 울산과 여러 지역의 교회에 큰 변화와 결실이 일어났으니, 실로 하나님은 인간관계와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크게 역사하심을 보게 된다. 

정덕생 목사

정덕생은 신앙생활의 초기부터 교회 설립에 관여하며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에 몰두하였다. 그러던 중 1906년 2월부터 유급 조사로 안평교회 전도사로 일하게 되었고, 후에는 손안로(A. Adamson, 아담슨) 선교사, 왕길지(G. Engel, 엥겔) 선교사의 조사(助事)로 활동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한때 부산으로 내려가서 왕길지 선교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부산진교회에 출석하였는데, 그의 특출한 재능을 눈여겨본 왕 선교사가 그를 사역자로 키우기 위해서, 조사로 데리고 다닌 것이다.

그 후 정덕생은 선교사와 경남지역 일대를 순회하면서, 지역 복음화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1905년에는 기장 동부교회, 동래읍교회(현 수안교회), 통영의 대화정교회(현 충무교회), 의령 서암교회를 선교사와 함께 설립하였다. 또한, 1906년에는 왕길지 선교사와 더불어 양산읍교회, 함안읍교회, 그리고 함안의 부봉교회와 백산리교회 설립에 관여하였고, 1908년에는 왕 선교사와 함께 동래군(현, 부산) 장전리교회(현, 철마교회)와 금사교회 설립에 관여하였다. 그 외에도 송정교회(1909), 두구동교회(1911), 동래 신평교회(현, 칠암교회), 동래군 화전리교회(1913) 등의 설립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http://www.ccmm.news/news/articleView.html?idxno=779 

 

[이석배 역사칼럼③] 초기 울산 기독교의 귀한 일꾼, 정덕생 목사 - 교회네트워크신문

정덕생(鄭德生) 목사는 1881년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서 5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 이름은 정치영(鄭致榮)이었으나 서른이 되던 1911년 덕생으로 개명했다. 어릴 때는 향리에서 한학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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