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는 길이 오기 시작한다. 우리가 길을 걸어가는 것 아니라 길이 인생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다. 날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자박자박 걸어서, 하염없이 느리게 오기도 한다.
때론 멈춰 선 듯 하지만 기어이 우리 앞에 당도하고 만다. 우리가 젊었을 적이나 건강할 땐 스스로 즐겁고 신나게 걸었던 그 길, 실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지 않나.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떠나게 되는 그 길 말이다.
봄볕이 움 돋는 어느 날, 박 권사님이 탄 휠체어가 요양원 마당으로 마중 나왔다. 봄볕에 권사님은 눈을 뜨기 힘들어하셨다. 나는 등으로 볕을 가리고 권사님을 마주했다. 교회 이야기를 꺼내니 엄지 척을 하셨다. 박 권사님도 언젠가부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날 손과 등을 어루만지며 "기도하자", "고맙다"는 말을 거푸 하셨다. 그리고 또 엄지 척이다.
"할머니가 원래 말씀 안 하시는데 오늘은 어떻게 말씀도 하시고 좋아하시네요."라며 요양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박 권사님의 길은 여전히 거북이처럼 오고 있다. 하, 십 년 세월이 훨씬 넘도록. 기다리다 지치셨는지 손수 입을 닫으신 모양이다. 언제 당도할지 모르지만 일단 왔다 하면 순식간에 권사님을 모셔갈 길을 침묵으로 못내 그리워하고 계신지 모른다. 그 길이 내민 손을 잡고 꿈에 그리는 아버지의 집으로 조용히 돌아가시려고.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이시다. 예수님께 얹히면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다.
우리가 병들지 않아도 노쇠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기가 막힌 때가 있다.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는 그때, 예수님은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우리 인생을 걸어오신다. 참길 되신 예수님이 멈춤 없이 오신다. 우리 마음에 나부끼는 '오직 믿음'의 깃발 하나 바라보시며 날아서 뛰어서 걸어서, 때론 순식간에 기꺼이 오신다. 샬롬, 인사하시며.
에세이스트 예룻은 울산문인협회와 한국에세이포럼, 하나문학회 회원이다. 저서로는 '거기에 있을 때' 외 3권이 있다. |
관련기사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간] '설교에 맛을 더하는 예화 사용법' 출간 (김정훈/브니엘 출판) (0) | 2024.08.27 |
---|---|
정진은 박사의 『참된 회심과 구원의 하모니』를 읽고 (0) | 2024.08.20 |
뮤지컬 '영웅', 9월 울산에서 막이 오른다. (0) | 2024.06.21 |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교회 목회의 새 방향 (도서출판 동연) (0) | 2024.06.19 |
언양온누리교회 설립 13주년 기념, 교회의 미래를 주제로 4인 4색 특강 진행해 (0) | 202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