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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칼럼] 안식교에서 나온 창조과학자들의 역사,「창조론자들」

by 교회네트워크신문 2022. 8. 31.

과학적 창조론에서 지적 설계론까지

내가 만난 넘버스의 『창조론자들』

2012년에 우연히 작가 넘버스를 알게 되었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피에서 여러 글을 읽어보다가'『창조론자들』원서를 내가 읽고 반납했으니, 다른 분들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는 게시글을 2, 3개 읽었다.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은 이 책의 원서를 필독서처럼 회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국내에 넘버스가 편집하여 출판된『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가 번역되어 있어서 읽어보았다. 넘버스가 맡은 아티클은 창조과학의 현황을 소개한 것이었다. 너무 상세히 창조과학의 적극적인 활동상을 소개하는 바람에, 나는 그를 창조과학측 학자로 잠시 오해했었다. 그의 아티클(article)에서 안식교인들과 창조과학과의 관계를 확인해주는 짧은 글을 내 책에 인용했었다.

하버드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한『창조론자들』의 원서.  표지 그림이 노아의 홍수인 까닭은, 안식교인들의 홍수지질학 때문일 것. 그래서 한국어판의 표지도 노아의 홍수를 담고 있다.

나의 첫번째 책이 나온 후 넘버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고, 이화여대 출판부에서 출간한『신과 자연』은 물론이고, 2014년경에『창조론자들』원서를 구입해서 일독해 보았다. 깜짝 놀랄 역사가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창조론자들 원서를 개인적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출판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외워버릴 심사였다. 절반정도 번역했으나 제주도로 오면서 시간이 없어 번역은 진척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좋은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니, 오히려 내 번역이 정체된 것이 다행이었다. 

역사가 넘버스

넘버스는 전화를 받으면, “Ron Numbers” 라고 대답하는데, 그러면 가끔 상대편에서 끊어버리는 일이 있다고 한다. 'Wrong Numbers' (잘못 거셨습니다)로 들리기 때문이다. 넘버스는 세계적인 과학역사가다. 구글링을 잠시 해보아도 그가 얼마나 많은 아카데믹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독특하게 안식교 출신이다. 그의 집안은 4대째 독실한 안식교 집안이다. 그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친지들 중에는 안식교 목사가 수두룩하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안식교 교육기관에서 창조과학을 배웠다. 안식교 대학인 로마린다 대학(Loma Linda University)에서 신성불가침의 엘런 화이트(Ellen Gould White/안식교 교주)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바람에 안식교에서 축출되었다. 이런 독특한 안식교적 배경 때문에 그는 미국의 의료역사분야에서 권위있는 학자가 되고, 또한 안식교 출신의 창조과학자들의 역사에도, 그리고 과학과 종교 간의 대화에도 탁월한 업적을 남긴다.

역사책 『창조론자들』

이 책은 과학책도, 신학책도 아닌 역사책이다. 이 역사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다윈 이전에도 이미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믿음이 과학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겐 성경의 족보에 근거한 육천년 밖에 되지 않은 지구를 믿는 신앙도 건재하고 있었다.) 다윈의 책 이후 20세기 초까지 과학과 신앙을 접목하려는 학자나 교회는 날-시대이론과 간격이론으로 대응하였고, 유신론적 진화론의 씨앗 형태도 존재하였다. 이 모든 이론들은 어쨌든 오랜 지구를 인정한 창조신앙이었다.

하지만 6,000년 된 지구를 믿는 신앙으로 진화론을 상대하고자 끊임없이 공부한 이가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다. 그의 최대 관심은 안식교의 교주 엘런 화이트의 가르침이었다. 화이트의 가르침과 독학으로 배운 지질학을 접목한 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 가 오늘날 지질구조의 원인이었다는 홍수지질학이었다. 그는 19세기말부터 꾸준히 독학으로 공부하며 저술활동을 한 과학 아마추어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근본주의』라는 잡지가 발행되었지만,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혼용되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주류의 창조신앙은 여전히 날-시대이론과 간격이론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전투적이고 분리주의적인 근본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근본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 근본주의자들이 진화론과 상대할 새로운 저격수로 고용한 이가 바로 프라이스다. 근본주의자들은 아마추어 프라이스에게 전문가의 칭호를 부여하고 선전해 주었다. 근본주의자들은 진화론이라는 공통의 적만 생각했지, 날-시대 이론이나 간격 이론이 근본적으로 홍수지질학과 어울릴 수 없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식교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창조론을 연구하는 학회가 결성되면, 그 학회에 속한 안식교인들은 날-시대론자들, 간격론자들과 하나가 될 수 없었다. 몇 개의 창조론학회가 결성되었다가 해체되길 반복한다.

프라이스의 뒤를 이은 안식교 창조론자들은 결국 자기들만의 교육기관에서 홍수지질학을 교육하는 쪽으로 나갔다. 하지만 꾸준히 안식교 창조론자들과 학회를 유지하면서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을 지지한 침례교인이 바로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였다. 모리스의 발표를 듣고 교제를 나누기 시작한 신학도가 존 위트콤(John Whitcom)이었다. 안식교인들이 이루어 놓았던 홍수지질학을 가장 세련되게, 안식교의 흔적을 지운 채로 다듬어 낸 책이『창세기의 홍수』이다.(『창세기 대홍수』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책을 굳이『창세기의 홍수』로 번역한 이유는 대홍수로 부풀려졌다는 번역자의 인식 때문일까?) 

이 책의 인기는 모리스를 창조과학의 아버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 책 덕분에 모리스는 안식교의 도움 없이도 독립적으로 홍수지질학을 가르치는 기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날-시대이론과 간격이론은 힘을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침례교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모리스의 창조과학은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창조신앙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모리스의 연구소는 홍수지질학의 복음을 전 세계로 전파하는 사도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한편 2차 대전 후 근본주의자들과 구분되고 싶은 복음주의자들은 신복음주의자라는 호칭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복음주의라는 용어의 오용 가능성 때문에 다시 복음주의자란 호칭으로 근본주의자와 구분되기를 원했다.) 복음주의자들은 오랜 지구 창조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인물사

이 책은 또한 제목이 표방하듯 인물중심의 역사책이다. 윌리엄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같이 잘 알려진 인물도 소개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홍수지질학으로 대표되는 창조과학의 역사를 만들어 온 인물들의 계통을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이 계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개혁신학VS창조과학』을 쓸 때 이미 안식교와 창조과학 간의 관계를 의심하고 관련 역사들을 수집하려고 했지만, ‘종교와 과학 협회에 안식교인 몇 명이 있었다’ 는 정도로만 알 수 있었다. 『창조론자들』을 읽었더라면, 내 책은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을 읽기 시작하면 손을 땔 수 없게 만드는 요소는 인물들의 활동을 너무나 세밀하게 복원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넘버스의 안식교적 배경 때문에 그가 수많은 안식교 창조론자들과 밀착 인터뷰를 나누고, 그들이 주고받은 서신들을 수집하여, 그들의 애환과 탄식마저 모조리 살려 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원된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다. 모리스가 『창세기 대홍수』를 쓰면서 안식교의 흔적을 세탁하는 것과 관련된 뒷이야기, 인간과 공룡이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동원된 소위 버딕의 발자국에 관련된 에피소드, 학력위조에 관련된 수많은 웃지못할 해프닝 등은 여태껏 내가 읽은 역사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역사책으로 꼽을 만 하다. 부인할 수 없는 미국역사의 일부인 창조론자들의 역사를 이처럼 세밀하게 복원한 역사책이 없었기에 하버드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하지 않았을까?

이 책이 인물사란 점은 중요한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원숭이 재판' 같은 유명한 사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지 않는다. 이 점에 관해서는 어쩌면 사건만 알려져 있고 인물은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교회에 오히려 다행이다. 사건은 결국 모두 인물이 일으킨다. 인물을 알아야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인물 중심 소개 덕분에 원숭이 재판 때 왜 홍수지질학의 원조 프라이스가 참여하지 못했는지, 그가 어떻게 재판 전후에 브라이언과 교류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숭이 재판 같은 사건은 한 챕터로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넘버스는 에드워드 라슨(Edward J. Larson)의『신들을 위한 여름』(Summer For Gods, 글항아리)을 통해 부족한 정보를 채울 것을 소개해 놓았다.

한국교회에 미칠 영향

『창조론자들』은 한국의 창조론자들에겐 감춰놓았던 뿌리, 그리고 지금도 창조과학의 든든한 동반자인 안식교를 노출시켜버리는 책이다. 한국창조과학회에서는 누구보다도『창조론자들』을 먼저 읽었다. 아마도 넘버스가 한국의 창조과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창조과학회와 접촉했던 것 같다. 넘버스의 책이 나왔으니까, 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회람해보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창조과학의 역사를 헨리 모리스 이후로 기술하려고 애쓴다. 그 이전의 안식교와 겹치는 부분을 언급하지 않기 위함이다. 헨리 모리스에게 영향을 주었던 안식교의 창조과학에 대해 한국창조과학자들과 신도들은 거의 은폐수준으로 함구하고 있다. 이재만의 최신 저서 『창조주 하나님』을 보면 분명히 안식교를 언급하는 것 같은데, 안식교라고 쓰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은폐뿐 아니라 창조론의 역사를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왜곡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에서 이재만은 창조론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253쪽 이하). 이재만에 의하면, 간격 이론은 19세기 초에 대두되었다가, “교회에 크게 파급된 것은 1970년에 커스탄스(Custance)가 자신의 책『혼돈과 공허』에서 간격 이론을 옹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커스탄스에 관해서는『창조론자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주목하는 점은 간격이론이 1970년에 이르러서야 교회에 크게 파급되었다고 이재만이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짜 역사는 20세기 초에 가장 강력한 창조론은 간격 이론이었고, 그 증거가 『스코필드관주성경』이다.

역사 왜곡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재만에 의하면, “날-시대 이론의 가장 대표 격인 사람은 캘빈대학의 데이비스 영 박사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포기함으로써 사실상 이 이론은 결말이 났다. 포기한 가장 큰 이유도 역시 창세기의 순서와 지질시대의 순서가 결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만이 데이비스 영을 날-시대 이론의 대표 격으로 꼽은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창조론자들』에 의하면, 저명한 구약학자 에드워드 영의 아들인 데이비스 영은 1960년대에 『창세기 대홍수』의 열렬한 신도로 개종했다. 당시 대학원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학자가 없는 참담한 형편의 홍수지질학계는 개종자 데이비스 영을 홍수지질학의 선두에 설 재목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영은 지질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젊은 지구론자들에게 변절자가 되어 버렸고, 1960년대 말 CRS에 가입하길 거부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창조과학을 공격하는 선두에 섰고, 차츰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한 번 더 진영을 옮겼다. 즉 그는 한때 홍수지질학의 대표 격이었고, 그런 다음 점진적 창조론의 대표 격이었고, 지금은 유신론적 진화론의 대표 격이다. 이런 영의 지적 여정은 웬만한 창조론자들은 다 알고 있다. 영이 유신론적 진화론의 대표인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이재만이 영을 날-시대이론의 대표로 둔갑시켜버리는 역사조작을 감행한 이유는 과거 한 때 날-시대이론을 포기했었던 영이 그에게 유용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창조과학을 비판하기 위해, 홍수지질학을 사랑했지만 이미 포기한 영을 홍수지질학의 대표로 호출하고서는, ‘영이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포기함으로써 사실상 홍수지질학은 결말이 났다’고 한다면, 창조과학자들은 나를 얍삽한 재담가로 취급하지 않겠는가? 좌우간 데이비스 영에 관해서도『창조론자들』을 읽어보면 다 알 수 있다. 진짜로 주목할 점은 이재만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 날-시대 이론의 대표자도 1970년경에 나왔다. 결국 날-시대 이론에게도 20세기 초중반의 역사는 없다.

이재만의 의하면, “1980년대 말, 교회 안에 독특한 이론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점진적 창조론이다.” “점진적 창조론은 1990년 초에 캐나다 사람으로 크리스천 천문학자인 휴 로스(Hugh Ross)라는 사람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런 역사인식도 틀렸다. 20세기 내내 점진적 창조론은 발전해왔고,『창조론자들』에 의하면 모리스로 하여금 『창세기 대홍수』를 쓰게 만든 원인도 점진적 창조론의 유행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재만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 점진적 창조론에게도 20세기 초·중반의 역사가 없다. 이재만은 『창세기 대홍수』가 나온 “1961년을 현대 창조과학운동의 기점으로 본다.” 결국 이재만의 역사에 있어서 간격 이론, 날-시대 이론, 점진적 창조론은 모두 1961년 이후에 일어났다. 왜냐하면, 이들 타협이론들(간격 이론, 날-시대 이론, 점진적 창조론)은 1961년에 먼저 태어난 창조과학 뒤에 나타난, 진화론에 타협한 이론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재만은 마치 현대 창조과학운동이 1961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헨리 모리스가 개척자인 것처럼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창조론 역사에서는 20세기 초중반의 창조론 역사가 통째로 생략되어 있다. 20세기 초 근본주의자들의 창조신앙을 양분하고 있었던 간격 이론과 날-시대 이론을 외로이 저항하고 있었던 프라이스가 20세기 중반에 기어이 홍수지질학을 근본주의자들의 주류신앙으로 만든 역사를 꼬리 자르듯이, 아니 머리 자르듯이 잘라내버리고 있다. 정교해야 할 책쓰기에서 이 정도니 더 왕성한 강연 활동에서는 얼마나 심한 역사왜곡이 행해지고 있을까? 이런 역사왜곡이 버젓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의 창조과학 애독자들이 『창조론자들』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문제를 짚어낼 수 있는 이유는 『창조론자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재만의 역사왜곡에 낚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창조론자들』 덕분으로 한국교회는 창조과학자들의 역사왜곡에 현혹되지 않고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외에도

『창조론자들』은 역사책이다. 역사를 모르면 오류에 빠지지 쉽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에게서 역사책 이상의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창조론자들』을 읽어도 그들의 신학적 문제에 대해 만족할만한 비판적 답변을 찾을 수 없다. 넘버스는 창조론자들의 신학적 배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보고할 뿐이지 세밀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직 창조과학의 신학적인 부분들만 집중해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비판하고 답을 찾아본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창조과학과 세대주의』 두 책이 좋은 보충제가 될 수 있다.

북칼럼니스트 윤철민목사

* 필자 윤철민 목사는 서귀포혁신교회(예장 고신)를 담임하고 있으며, 저서로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창조과학과 세대주의』, 『하나님의 집에 같이 살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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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철민 북칼럼니스트 ycm931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