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선(王大善, Watson, Robert Darling) 선교사는 울산지방의 교회들에서 직접 담임 교역자로 임명 받지는 않았으나, 주로 동사목사(同事牧師)로 활동한 선교사이다. 그에 대한 자료와 기록을 살펴보면, <울산지방 기독교125년사>에서는 장검교회(현, 울산수정교회) 초대교역자인 이기선 목사의 순회목회를 도와서 동사 목회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제3회 경남노회 임시노회록(1917.9.1)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울산읍과 병영과 장검(금) 3처 교회에서 이기선목사 고빙 청원을 채용하고 9월 12일 하오 7시반에 위임예식을 행하되 그 위임은 왕길지, 정덕생, 김준홍씨로 정하고 왕대선씨와 동사목사가 되게 하다
이를 볼 때, 왕대선 선교사는 비단 장검교회 한 곳뿐 아니라, 울산의 여러 교회들에 대해서 동사목사로 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왕대선(Watson, Robert Darling.1876.10.23.~1942.2.4.)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호주 빅토리아주 일레인(Elaine)에서 출생해서 어린 시절을 발라랏의 에배네저교회 주일학교에서 우리가 잘 아는 멘지스(Menzies, lsabella)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멘지스는 훗날 우리 울산과 부산, 경남지역에서 초기에 활약한 선교사였다. 왓슨은 그녀의 영향을 받아 선교사가 되려는 꿈을 가졌다. 오몬드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1910년 11월에 발라랏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에이미 비어드(Amy Elizabeth Beard)와 약혼했는데, 에이미는 왓슨을 만나기 전에 이미 빅토리아장로교여전도회(PWMU)의 선교사로 한국에 지원하려고 결심하고 있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왓슨을 선교사로 만들기 위해 두 여인 멘지스와 에이미를 붙여주시고 사용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1911년 10월 26일에 상해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한국에는 11월 11일에 부산을 통해 입국하였다. 호주 선교부는 그에게 마산 진해 고성 거제 통영 등, 경남 서부지역의 교회들을 돌보도록 맡겼다. 그리하여 그의 주된 사역은 바로 이 지역에 기독교공동체, 즉 교회를 건설하는 일이었고, 두 번의 휴가를 제외하면 온전히 여기에 헌신하였다. 부인 에이미 선교사도 눈부신 활약으로 이 지역의 여성들과 어린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였는데, 성경공부반 뿐 아니라, 야간학교까지 운영했다. 한국에서 세 자녀를 낳아 길렀으나 건강 악화로 1935년 4월에 4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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