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만(洪成晩)은 1920년대 울산 기독교 전래 초기에, 울산의 여러 교회들을 순회하며 섬겼던 교역자였다. 기록에 나와 있는 교회 수만 해도 무려 12여 개가 넘는 교회를 순회하며, 또는 단독 시무하며 섬겼다. 당시가 일제 강점기였음을 감안할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교회들을 순회하며 돌본다는 것은 매우 큰 헌신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후에는 이단 시비에 걸려서 결국 목회를 중단하고 말지만, 그런 일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기에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홍성만의 회심이나 신앙 입문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의 신학 수업 과정에 대해서는 그의 일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는 교역자가 되기 위해 먼저 경남노회 소속의 경남성경학원을 3년간 다녔었다. 성경학원을 졸업한 후에 노회에서 실시하는 고시에 합격하여 전도사로 임명받았다. 그러니 신학의 기초만 하고 목회 현장에 곧바로 뛰어든 것이다. 당시는 한국 교회 초창기였으므로 목회할 사람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목회 중이던 1931년 봄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ㄱㅖ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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